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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10월01일 10시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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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독립운동가 유동하(劉東夏)선생 선정
이토 히로부미 처단의 숨은 공로자

국가보훈처(처장 김 양)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안중근의사와 함께 이토 히로부미 처단 계획에 참가하여 의거가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한 유동하 선생(1892.1.5∼1918)의 서거 90주년을 맞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발표했다.

선생은 1892년 1월 5일 함경북도 원산 길명(吉明)에서 부친 유경집과 함흥군수의 딸 강씨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러시아어에 능통한 인재였다.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이 보도되자, 국민회 원동위원들과 대동공보사 관련자들이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를 처단할 것을 논의한 결과 명사수인 안중근 의사가 추천되었으며, 유동하의 부친 유경집과 우덕순·조도선·김성화·탁공규 등은 구국혁신을 맹서하고 연서한 뒤 "7인 동맹"을 조직하였다

. 이 과정에서 유동하는 부친의 명을 받들어 안중근과 우덕순을 하얼빈까지 무사히 동행하고 연락을 담당하여 의거를 결행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의 의거 성공 후 러시아 헌병에 체포된 선생은 재판에서 이토히로부미의 도착일시를 전보로 타전해 살인을 방조한 죄목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언도받고 복역 후 1911년 8월 22일 여순 감옥에서 출옥하였다.

출옥 후 선생은 부친과 함께 남러시아의 싸말리아로 이주하여 초등학교를 설립해 교육에 종사하였으며, 시베리아 동포사회에 애국정신을 전파하는 역할을 하다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혁명이 성공하고 볼셰비키 혁명군에 가담하여 활동하던 중 1918년 가을, 시베리아에 주둔한 일본군에 의해 11명의 애국청년들과 함께 체포되어 싸말리야 강가에서 총살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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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오직 (sinmoon@gmail.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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